24 novembre 2022
- 14 janvi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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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1F, 5 Palpan-gil, Jongno-gu, Seoul

Perrotin Seoul is pleased to present A Canker in the Leaf, Matthew Ronay’s first solo exhibition in Korea. Ronay presents seven new sculptures conceived in the artist’s signature material of polychromed basswood prepared through the process of hand-carving and dyeing.


페로탕 서울은 매튜 로네이의 첫 한국 개인전 «A Canker in the Leaf»를 개최합니다. 본 전시에서 로네이는 자신의 시그니처 소재인 참피나무를 수조각하고 염색하여 제작한 다채로운 색상의 신작 7점을 선보입니다.

The suite of new sculptures was conceived with stages of reflections including those upon the poems of Edna St. Vincent Millay (1892 –1950), one of which a line is eponymous with the show title A Canker in the Leaf.


로네이가 새롭게 선보이는 조각 작품들은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 1892-1950)의 시에 대한 고찰 등 다양한 반추의 단계를 통해 탄생했으며, 그중에는 금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A Canker in the Leaf”라는 구절도 포함됩니다.

Two Halves is made up of two bodies, one hovering over another, their tenders (genitalia) are touching. The title implies that together they are whole. They are laying on a piece of fantasy furniture, or is it a scanner, like a CT scan? It is a work celebrating love and touching, a portrait of a type of intimacy.


<Two Halves>는 두 개의 몸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몸이 다른 하나의 위에 떠 있는 상태로 서로의 성기가 부드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하나가 되어 전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마치 환상(판타지) 속의 가구, 혹은 CT 스캐너 위에 누워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은 사랑과 감동을 기리는 동시에 친밀감을 표현한 초상입니다.

The title Gonambulator is a portmanteau of "gonad" and "ambulator." I view the work as a walking reproductive organ that is offering/presenting an ambiguous object. The orange shape is the gonad, inside it is a yellow organ, or larva. The black hand-like shape is offering a strange color drained tumor.


작품명 <Gonambulator>은 ‘생식샘(gonad)’과 ‘보행기(ambulator)’의 합성어로, 저는 이 작품을 추상적인 대상을 제시/표현하는 일종의 걸어다니는 생식 기관으로 보았습니다. 주황색 부분은 생식샘이고, 그 안에는 노란색의 기관 혹은 유충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손모양의 검은 부분에서는 기괴하게 색이 바랜 듯한 종양이 뿜어져 나옵니다.

An Elder is ancient but always new, and quiet. It is contemplative and wise. A priest, an alchemist, a goddess. It is lost in the recursion of the universe. It is a figure with a few strands of hair, or perhaps some sort of thicker keratin projection. They exist inside and outside at the same time, looking at an orb.


<An Elder>은 연령이 높지만 항상 새로우면서도 진중합니다. 사색적이고 현명하여 마치 사제, 연금술사, 여신과도 같습니다. 몇 가닥의 머리카락, 혹은 좀 더 두터운 케라틴(keratin) 형태와 함께 이루어진 채 우주의 재귀에 빠진 그는 구체를 바라보며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The Tower, with its verticality can be a body, or be read as a map of intersecting systems. If we rethink the shape of the body, the brain is on the ground, it has leg-like parts (white splatter), it has a head-like part (green pitted), it has a nervous system (pink band with protrusions), and it has an orifice (squiggly thing on the back of the green “head”). The craggy orange parts are the disease, or they are the immune response, or they are fat, although tumorous they can read as clumps of hair. The clump that is underneath a longer penile-like protrusion reads as wrinkly scrotum. Taken all together the piece emits an abstract bio-machine quality, an alien.


수직으로 세워진 <The Tower>는 인체(人體)로 볼 수도 있고, 교차로 시스템의 지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우리 몸의 형태를 다시 구상하여 떠올려 보자면, 겉 표면이 산발적으로 움푹 패인 녹색 빛의 머리 부분과 그 밑으로 하얗게 뻗어져 있는 다리, 그리고 굽이치는 분홍색 밴드는 마치 신경계를 표현한 듯합니다. 또한 녹색 빛의 머리 부분 후면에는 혈관의 오리피스(orifice)로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주황색은 질병, 면역반응, 혹은 지방으로 볼 수 있으며, 어쩌면 종양이지만 머리카락이 뒤엉킨 덩어리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음경처럼 생긴 기다란 돌출부 아래의 덩어리는 주름진 음낭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합쳤을 때, The Tower는 추상적으로 표현된 생물학적 기계이자 외계 생명체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Exhaust is a sculpture at rest. The orangish shape is a being of sorts, resembling a sperm, although it seems to have a thrice cleft terminus. It is leaning, resting, on what appears to be a type of tree that is shrouded in grey rain (acid rain) with a sulfuric sun/star behind it. The plum brown screen doubles as mountainscape and more smog. I imagine the whole scenario as a climate crisis endpoint, hence the title Exhaust, implying the exhaustion of the figure but also the carbon exhaust in the air. On the back side of the piece is a kind of tongued shape holding a uranium green bar, implying an antidote or bio system of cleansing.


<Exhaust>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태를 표현한 조각입니다. 오렌지색 부분은 끝이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기는 하지만 일종의 정자를 닮은 형태로, 회색의 빗물(산성비)로 드리워진 나무처럼 보이는 것에 기대어 뉘어져 있으며 그 뒤로는 황색의 태양/별이 있습니다. 자주빛을 띄는 갈색의 면면이 산의 형태로 겹을 이루며 뿌연 스모그 효과를 자아냅니다. 결론적으로 저(작가)는 기후 위기를 이 작품의 전체적인 서사로 염두해 두었기 때문에 작품명은 고갈을 의미할 뿐 아니라 대기 중 배출된 탄소를 뜻하기도 합니다. 작품 뒷면의 녹색 우라늄 막대를 들고 있는 혀 모양은 해독제 혹은 생물학적인 정화 시스템입니다.

Factory is a piece of fantasy architecture. See: Frederick Kiesler’s Endless House. Except this green building, the factory, houses energy. The energy is transferred to the white tube. The ribbon floating above the factory is the waste from creating the energy. The thin red line is the blood or life force created in the green building that is stored in the white tube and distributed as a kind of soft red licorice like tubing. Shades of Jacques Tati’s Mon Oncle.


<Factory>는 건축가 프레데릭 키슬러(Frederick Kiesler)의 <Endless House>와 같이 환상 속의 건축물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공장은 에너지를 저장하며, 이 에너지는 흰색 관을 통해 운반됩니다. 공장 위에 부유하는 리본의 형태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입니다. 가느다란 빨간 선은 녹색 건물에서 생성된 혈흔 혹은 생명력을 뜻하며, 흰색 관에 저장되어 있다가 튜브처럼 부드러운 붉은 감초의 형태로 흩뿌려집니다. 자크 타티(Jacques Tati)가 제작한 프랑스 코미디 영화 《Mon Oncle》(1958)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Model of Frederick Kiesler's Endless House (1950-60). Image ©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Department of Architecture and Design Study Center. Photographer: George Barrows.

Still from Mon Oncle. Directed by Jacques Tati, Gaumont. France, 1958.

In Crevice, the landscape is seen as a psychological state. A crevice is experienced by a pale-yellow lozenge-shaped body. Is this shape alive or is it a type of exploratory vehicle, or a pill, a polyp? Towards the bottom of the piece, the deepness and darkness of the crevice starts to parallel sleeping, hence the small orange balding head with its eyes closed. The blue snorkel like shape shifts the metaphor toward deep sea, the duality of earth and ocean. The green grid applies a sense of logic to the scenario. Although the palette is bright the depiction has to do with under-ness. Underground and underwater are often associated with exploring the unconscious.


<Crevice>는 심리적 상태를 풍경화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틈새 사이로 옅은 노란색의 마름모꼴 물체가 노닙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으면서도 탐사 차량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알약, 혹은 점막에서 돌출된 용종이 아닐 까도 생각해 봅니다. 밑으로 내려가며 점점 깊어지고 어두워지는 틈새는 마침내 평행을 이루며, 이 지점에 민머리의 조그마한 주황색 물체가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습니다. 파란색의 스노클 형태는 심해로의 여정을 은유하며, 육지와 바다를 이원적으로 보여줍니다. 한편 녹색의 격자는 작품의 서사에 논리적 속성을 부여합니다. 전체적으로 밝은 색상의 작품이지만 내재한 의미는 심오합니다. 이는 땅속이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이 종종 무의식을 탐구하는 과정과 연관 지어지기 때문입니다.

Concurrently on view at Nasher Sculpture Center in Dallas, Texas:

Matthew Ronay, The Crack, the Swell, an Earth, an Ode, 2022

Matthew Ronay: The Crack, the Swell, an Earth, an Ode
Matthew RONAY

Né en 1976 à Louisville, Kentucky, USA
Habite et travaille à Brooklyn, New York, USA

New York-based artist Matthew Ronay was born in 1976 in Louisville, Kentucky, and studied at the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before earning his Masters in Fine Arts from Yale University in 2000. Ronay creates hybrid forms that exist between a primordial and futuristic state, which seek to explore ritualistic habits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 bodies and the world we inhabit. His hand-crafted, colorful configurations embody our corporeal struggle, reminding us of the power of objects beyond material culture and mass production. Drawing on traditions of folk and pre-avant-garde art, as well as surrealism, mythology, and psychedelia, Ronay has developed a distinct artistic style that draws viewers in with its playfulness and then unveils a deeper, more multidimensional reality.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매튜 로네이(Matthew Ronay)는 1976년 미국 켄터키주(州)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메릴랜드 미술대학교(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에서 수학한 후 2000년에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순수예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로네이는 사람의 육체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간의 관계, 그리고 제의적 관습을 탐구하며 원초적이고 미래적인 상태 그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를 조각한다. 수공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색상의 조각들은 인체의 실재적 몸부림을 표현하며, 물질 문화와 대량 생산 너머에서 사물이 갖는 힘을 상기시킨다. 로네이는 초현실주의, 신화, 환영(psychedelia) 뿐 아니라 민속미술과 전위 예술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예술관을 구축하였으며, 유희적 형태의 작업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 후 더 깊고 다차원적인 현실로 그들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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